지난 여름 나는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 오후, 우리는 지금까지 외식을 너무 많이 했다는 생각에 식당 음식보다 더 저렴하고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어서 식료품 점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시리얼이었다. 시리얼이 있는 진열대를 발견했고 거기에는 선택할 수 있는 시리얼 종류가 너무 많았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은 서로 잡아당기고 흔들며 통로를 뛰어다니느라 멈추라는 우리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분명 엄청나게 재미있었겠지만, 그건 무언가를 들이받기 전까지의 일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빠른 결정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과 나는 알레르기가 많다. 내 알레르기는 치명적일 수 있었고 아이들의 알레르기는 통증을 일으킬 뿐 다행히 그 이상으로 심각해지지는 않았다. 시리얼을 고르는 동시에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지켜보느라 나와 아내는 진열대 앞에서 진땀을 뺐다. 상자에 적힌 재료명을 꼼꼼히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따라야 할 간단한 규칙이 있었다.
우선 상자에 만화가 그려진 시리얼은 자동으로 제외했다. 그런 시리얼은 대체로 설탕이 많이 들어 있고 그것을 먹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의 에너지는 이미 충분했다. 둘째, 글루텐프리 시리얼(한 아이에게 필요하다)을 찾아야 하는데, 보통 글루텐프리라는 제품은 그렇다는 사실을 상자에 자랑스럽게 적어두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셋째, 원재료를 꼭 확인해야 한다. 이는 어렵지 않다. 나에게는 수십 년의 연습 끝에 기른, 정말 유용한 습관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식품을 집어 들면 원재료 목록에서 내가 먹으면 위험한 성분을 자동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문제가 될 만한 재료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 한, 거의 아무 생각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확인할 수 있다. 잠시 후 괜찮아 보이는 콘플레이크 한 봉지와 그래놀라 같이 보이는 상자 하나를 집어 들고 진열대로 향했다.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그 진열대에서 챙겨야 할 우유를 비롯한 몇 가지를 깜빡했다. 살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 머릿속 체크리스트에서 그 항목들을 놓친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보니 그래놀라는 실제로 정말 맛있었고, 콘플레이크는 형편없었다. 우리는 서두르느라 중요한 신호를 놓쳤다. 바로 봉지 겉면에 쌓인 먼지였다. 오랜 시간 진열대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면 안 되는 제품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일상 생활에서, 그리고 방금 들려준 일화에서 쉽게 행동 과학의 핵심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단,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알아야 한다. 기본적이지만 종종 간과되는 교훈으로 시작하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는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다. 어떤 시리얼이 최고인지 그냥 생각하는 것만으로 바로 알 수 없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옵션을 분류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들일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어떤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면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이 경우 아이들이 진열대에 부딪혔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의력, 의지력, 암산 능력 등에도 한계가 있다. 이쯤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한계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불과하다. 예컨대 나로서는 무한한 주의력을 갖는다는 것, 즉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동시에 인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이런 한계를 감안할 때 우리의 마음은 가진 것을 최대로 활용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 우리는 단순한 의사결정 경험칙(經驗則, 관찰과 측정에서 얻은 법칙)을 사용해서 시간, 주의력, 멘탈 에너지를 절약한다. 예컨대 만화가 그려진 시리얼을 배제하듯이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경험칙을 휴리스틱 heuristics 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마음이 절약하는 또 다른 방법은 순식간에 무의식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의식적인 습관은 머릿속에 자동화되어 있는 연관성이다. 이 연관성은 모르는 식품에서 치명적인 원재료가 눈에 띌 때처럼 특정 자극이 눈에 띌 때 특정 행동을 취하게 한다. 습관 덕분에 의식적 마음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
이런 절약 기법이 정말 인상적이긴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문제가 생긴다.
첫째, 항상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때로 중요한 부분(봉지에 쌓인 먼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휴리스틱이나 다른 지름길이 기대에 어긋난 결과를 내는 것을 인지 편향 cognitive bias 이라고 부르며, 이는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리라 예상하는 바와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 사이에 나타나는 시스템상의 차이를 가리킨다.
둘째, 올바른 선택을 할 때조차 타고난 인간의 한계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의도(우유 구매)를 항상 따르지는 못한다. 이는 의도-행동 차이intention–action gap 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뛰어다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맥락이었다. 그래서 제한된 주의력을 작업(원재료 확인, 우유 구매)에 제대로 기울이지 못했다. 만약 우유가 다른 진열대에 있었다면 이를 보고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아이들이 뛰어다니지 않았다면…. 아,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수십 년간의 행동 연구를 몇 개의 요점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위 컨텐츠는 『행동의 과학, 디자인의 힘』의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이전 글 : 2025년 새해, ‘푸른 뱀의 숲’에서 얻은 지혜
다음 글 : 다음 글이 없습니다.
최신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