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ad First Physics : 생생한 게임 개발에 꼭 필요한 물리 이야기』 역자 홍형경
Head First 시리즈가 세상에 나온 지도 몇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여러 소프트웨어 분야의 입문서로써, 그 구성의 독특함과 어려운 개념들을 머리 속에 쏙 넣어주는 Head First만의 놀라운 학습법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아온 시리즈로 명실공히 자리를 굳혀 왔다. 역자 본인도 여러 Head First 시리즈를 번역해오면서, "와! IT 서적을 이런 식으로도 만들 수 있구나!" 하고 순간순간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오라일리사 홈페이지를 훑어보다가 Head First Physics가 출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리학이라니? 드디어 IT 분야를 넘어서는가?!" 라는 놀라움을 느낌과 동시에, "이 책은 반드시 내가 번역을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역자 본인은 대학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재료공학을 전공했는데, 왜 IT 분야에서 일하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라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다. 여하간, 재료공학이란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물리학을 깊이 있게 공부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양자역학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여간, 한 때는 물리학에 심취했던 본인으로서, Head First Physics란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 그런 느낌이었다.
왜 하필이면 물리학인가?
그런데 왜 갑자기 IT가 아닌 분야에서 Head First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했을까? 2008년부터 오라일리사에서는 Head First Physics를 필두로 IT 이외의 분야에 대한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Physics와 더불어 Head First Statistics, Head First 2D Geometry 등이 출간되었다. 역자가 보기에는 Head First만의 독특한 구성과 학습법과 시장에서의 열렬한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뒤, 일단 IT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분야부터 손을 대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물리학이 IT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물리학은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학문이다. 특히 현대 과학문명의 기초에는 물리학이라는 거인이 그 기반에 단단히 버티고 있다. 만약 양자역학의 산물인 진공관, 트랜지스터, 반도체가 없었다면, 컴퓨터란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인공위성이 없었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네비게이션 시스템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소프트웨어와도 연관성을 갖고 있다. 사실, 물리학과 소프트웨어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독 한 분야에서 만큼은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매트릭스의 아키텍트와 네오
역자는 매트릭스란 영화를 좋아한다. 화려한 액션도 좋긴 하지만, 그 내면에서 영화가 말해주는 메시지가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총 3편까지 나왔는데, 역자는 그 중에서도 2편의 마지막에 나오는 네오와 아키텍트(메트릭스의 창시자) 간의 대화장면을 아주 흥미롭다고 느꼈다. 영화에서 기계들은 인간들의 생체 에너지를 이용해 생존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20세기 말에 살고 있다고 알고 있다. 즉, 아키텍트는 거대한 가상세계를 만들고 대부분의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조정해서 자신이 창조한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게 하고 있다. 이 인간세계(가상세계)는 모든 물리법칙이 통용되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르지 않게 아키텍트가 만든 소프트웨어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상세계의 물리법칙을 깨는 존재가 있는데, 그 존재가 바로 네오이다. 네오는 건물을 뛰어 넘기도 하고, 슈퍼맨처럼 날아다니기도 하고, 가상세계에서 죽은 사람도 살리기도 한다. 이건 아키텍트 입장에서 보면 크나큰 헛점이며, 심각한 버그다. 아키텍트는 하늘을 향해 던져진 물체는 중력가속도에 의해 떨어지며 양력을 받아야만 하늘을 날 수 있게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네오가 이런 물리법칙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에 네오와 같이 프로그래머가 의도하지 않은 버그가 발생한다면, 해당 게임제작사는 큰 문제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아키텍트와 네오]
매트릭스의 아키텍트가 물리학을 공부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대부분의 컴퓨터 게임은 물리엔진이란 것을 사용하고 있다. 즉, 게임 캐릭터가 걷거나 뛰거나 활이나 총을 쏘는 등 모든 운동은 바로 물리학의 기본 운동방정식을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한 물리엔진에 의해 동작한다. (물론 게임 특성 상, 네오 같은 존재가 필요해서 의도적으로 물리법칙을 뛰어 넘는 기능을 가진 캐릭터나 사물이 존재한다) 역자는 게임 프로그래밍 경험은 없지만, 아마도 물리엔진을 직접 구현한 프로그래머들은 물리엔진 제작 시 물리학 서적을 참조했을 것이다. 만약 Head First Physics 라는 책이 몇 년만 일찍 나왔다면, 이는 게임 프로그래머들에게 사막의 오아이스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물리학 책이 내용도 어렵고 공식과 수식이 많이 등장해서 읽기에 까다로운데, 이 책은 소설책 읽듯이 기초 물리학에 대한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특징
물리학을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고전물리와 현대물리로 나눌 수 있다. 고전물리에는 역학, 전자기학, 광학 등이 포함되며, 현대물리에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이 포함된다. 이 책은 고전물리 중 역학 분야만 다루고 있다. 즉 우리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의 운동에 대해서 Head First 만의 독특하고 우수한 학습법을 이용해 어려운 개념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실생활에서 익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예를 사용하여 물리학을 설명한 점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쫓아오는 유령선을 맞추기 위해 대포의 각을 얼마로 맞춰 발사해야 하는지,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의 궤도를 돌기 위한 탈출속도는 얼마인지, 우주정거장에서 인공중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크린 상에서 오리 맞추기 게임을 구현하는 등의 다양한 예를 통해, 물리학을 우리 곁에 한 결 친숙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또한 원리를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도 물리학에 대한 이해를 더욱 쉽게 하고 있다. 약간 창피한 일이지만, 역자 본인도 위치에너지가 무한대에서 왜 0 인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역학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고전물리나 현대물리를 모두 다루기에는 책 한 권으로 부족한 측면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아주 유용한 서적이 될 것이다. 또한 물리를 배우는 이공계 대학생이나 물리학 전공자들도 기본적인 역학 개념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자의 개인적 바램은 후속으로 현대물리를 다루는 Head First 시리즈가 나왔으면 한다. Head First Theory of Relativity(상대성 이론)나 Head First Quantum Mechanics (양자역학) 같은 책이 나온다면, 분명히 물리학 학습에 있어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